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의 로마 (문단 편집) ==== [[독일 제국]] ==== [[1871년]]에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 지역을 통일한 독일 제국은, '[[카이저]]' 라는 칭호[* 널리 알려진 상식이지만, 카이저라는 칭호는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인 '[[카이사르]]'에서 유래했다. 위에 서술된 러시아의 '[[차르]]'도 마찬가지.]를 사용하며 [[제2제국|신성 로마 제국의 뒤를 이었노라고 선언]]했다. 하지만 이는 다른 주장들과는 달리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, [[가톨릭]] [[군주]]가 통치했던 서로마 제국과[* 엄밀히 말하면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불과 25년 뒤에 멸망했지만...] 신성 로마 제국과는 달리 독일 황제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이다. 그러나 황가였던 [[호엔촐레른 가문]]만 두고 보면 개신교 가문이었음에도 [[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|브란덴부르크 변경백]]의 신분을 가진, 신성 로마 제국의 [[선제후]] 중 하나였다. 즉, 원칙상으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도 될 수 있었던 가문이라 종교가 개신교도더라도 아예 명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. 이들이 가장 크게 비판 받은 건 아무리 [[프로이센 왕국]]에게 군사적으로 털렸다지만, 최소한 독일계 가톨릭 국가들의 맹주 노릇은 하던 오스트리아를 빼놓은 통일이라는 점이었다. 그래서 [[독일 제국]] 성립 이후에도 제국 내의 국민들 사이에는 [[소독일주의]]에 만족하지 않고 오스트리아까지 포함한 [[대독일주의]]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. 이런 배경으로 훗날 [[나치 독일]]은 강력한 [[범게르만주의]]를 발판삼아 독일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열렬한 호응 하에 [[안슐루스]](대독일 통일)를 이끌어냈다. 하지만 나치가 [[2차 세계 대전]]에서 패망하고 독일의 엄청난 흑역사로 남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시 갈라졌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도 안슐루스의 원인인 [[대독일주의]]은 양국 모두에서 금기시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